
갑과 을은 같은 편이에요. 그런데 갑과 병도 같은 편이에요.
처음 보는 글자라면 무슨 이야기인가 싶죠. 갑, 을, 병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날짜를 표시할 때 사용해 온 열 개의 글자 가운데 앞의 세 개예요. 갑이 첫 번째, 을이 두 번째, 병이 세 번째죠.
이 글자들을 천간(天干)이라고 불러요. 모두 열 개이고, 차례대로 읽으면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예요. 한자로는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라고 써요. 전통적으로 해와 날짜 등의 이름을 만들 때 이 순서대로 사용해 왔고요.
그렇다면 왜 갑과 을도, 갑과 병도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비교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천간에는 글자를 구별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거든요. 하나는 오행, 다른 하나는 음양이에요.
갑과 을이 같은 편이라는 말부터 풀어볼게요
먼저 갑(甲)과 을(乙)을 나란히 놓아 볼게요. 글자 모양도 다르고 읽는 소리도 달라요. 그런데 전통 명리학에서는 둘 다 목(木)이라고 해요.
목은 나무라는 뜻이에요. 그렇다고 갑과 을이 실제 나무를 가리키는 글자라는 뜻은 아니에요. 옛사람들은 자연과 세상의 변화를 설명할 때 나무·불·흙·쇠·물이라는 다섯 이름을 사용했어요. 한자로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고, 이 다섯 갈래를 오행(五行)이라고 불러요.
오행은 세상에 물질이 다섯 종류뿐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여러 현상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전통적인 방식이에요. 오늘날 과학의 물질 분류와는 다르죠.
천간 열 글자에도 이 구분을 적용해요. 목에는 갑과 을, 화에는 병과 정, 토에는 무와 기, 금에는 경과 신, 수에는 임과 계가 속해요.
그러니까 갑과 을은 같은 오행인 목에 속하기 때문에 같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목이라는 점이 같다면 왜 굳이 갑과 을이라는 이름을 따로 두었을까요?
갑과 병도 같은 편이라고 했던 이유
이번에는 갑과 병을 볼게요. 갑은 목이고 병은 화예요. 오행이 다른데도 둘을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있거든요.
바로 음양(陰陽)이라는 또 다른 구분 때문이에요.
음양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어려워 보일 수 있어요. 낮과 밤을 떠올려 보면 조금 가까워져요. 낮과 밤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하루를 이루는 모습이죠. 옛사람들은 자연을 이렇게 서로 구별되는 두 측면으로 바라보기도 했어요. 음과 양은 그런 전통적인 생각을 설명하는 말이에요.
낮과 밤이 천간의 뜻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음양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예시죠. 천간에서는 열 글자 각각을 양(陽) 또는 음(陰)으로 구분해요.
그런데 이 구분은 글자마다 제멋대로 붙어 있지 않아요. 첫 번째 갑은 양, 두 번째 을은 음, 세 번째 병은 다시 양, 네 번째 정은 음이에요.
양, 음, 양, 음. 열 번째 계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씩 번갈아 나타나요.
이제 갑과 병을 다시 보면 답이 나와요. 갑은 첫 번째, 병은 세 번째라서 둘 다 양이에요. 목과 화라는 오행은 다르지만 음양으로는 같은 쪽에 놓이는 거예요.
반대로 갑과 을은 둘 다 목이지만, 갑은 양이고 을은 음이에요. 조금 전까지 같은 편이던 글자가 비교 기준을 바꾸자 달라진 셈이죠.
천간을 볼 때 중요한 건 어느 쪽이 진짜 같은 편인지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에요. 오행을 비교하고 있는지, 음양을 비교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차리는 거예요.
열 글자를 한눈에 놓아보면
지금까지 알아본 것을 표 하나로 모아볼게요. 왼쪽에는 오행을 적고, 그 옆에는 양에 속한 천간과 음에 속한 천간을 나란히 놓았어요.
| 오행 | 양(陽) | 음(陰) |
|---|---|---|
| 목(木) | 甲 갑 · 1번째 | 乙 을 · 2번째 |
| 화(火) | 丙 병 · 3번째 | 丁 정 · 4번째 |
| 토(土) | 戊 무 · 5번째 | 己 기 · 6번째 |
| 금(金) | 庚 경 · 7번째 | 辛 신 · 8번째 |
| 수(水) | 壬 임 · 9번째 | 癸 계 · 10번째 |
표에서 같은 가로줄에 놓인 두 글자는 오행이 같아요. 목이라는 줄에 갑과 을이 함께 있는 식이죠. 반면 양이라는 세로 칸에 있는 갑·병·무·경·임은 모두 양에 속해요.
여기서 한 가지 규칙을 더 발견할 수 있어요. 첫째, 셋째, 다섯째처럼 홀수 번째는 양이고, 둘째, 넷째, 여섯째처럼 짝수 번째는 음이에요.
이를테면 경(庚)을 읽고 싶다면 순서부터 떠올려 보세요. 경은 일곱 번째예요. 일곱은 홀수니까 양이고, 표에서 경과 신이 놓인 줄은 금이에요. 따라서 경은 금에 속하는 양의 천간, 곧 양금(陽金)이에요.
옆에 있는 신(辛)은 같은 금이지만 여덟 번째라 음이에요. 그래서 신은 음금(陰金)이라고 불러요.
이제 처음 보는 천간 이름도 무작정 외우기보다 어디에 속한 글자인지 확인할 수 있어요. 음과 양은 여기서 서로 다른 분류를 뜻할 뿐,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우월하다는 말은 아니고요.
그런데 갑이 정말 큰 나무라는 뜻일까요?
천간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 보면 갑은 커다란 나무, 을은 풀이나 꽃, 병은 태양, 정은 등불이라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해요.
그림처럼 떠올리기 좋은 설명이에요. 갑과 을이 똑같이 목이라고 했을 때 두 글자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는 구별해야 해요. 갑이 목에 속한다는 말과 갑을 큰 나무에 빗댄다는 말은 조금 달라요.
첫 번째는 전통 명리학에서 정해 놓은 분류예요. 앞의 표에서도 갑이 목이고 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두 번째는 그 글자를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사물에 빗댄 해석이에요.
이 차이는 옛 명리 해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어요. 《적천수천미》의 천간 부분에서 임철초는 갑을 기둥감이 되는 나무로, 을을 꽃과 열매로, 병을 태양으로, 정을 등불로 빗대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어요. 이런 비유에 지나치게 기대어 명리를 판단하는 일도 경계했죠.
그러니 나무와 꽃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굳이 모두 버릴 필요는 없어요. 기억을 돕는 그림으로는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 비유가 곧 천간의 정확한 정의이거나, 사람의 성격과 미래를 알려 주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읽으면 돼요.
병오라는 이름도 이제 조금 읽혀요
이제 이 두 가지 기준을 실제 이름에 적용해 볼게요. 병오(丙午)라는 두 글자예요.
앞의 병(丙)은 지금까지 배운 천간이에요. 뒤의 오(午)는 지지(地支)라는 또 다른 글자 모임에 속해요. 천간이 열 개라면 지지는 열두 개예요. 이 두 종류의 글자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나씩 짝지어 전통적인 해와 날짜의 이름을 만들어 왔어요.
지지는 아직 자세히 몰라도 괜찮아요. 이번에는 앞의 병이 무엇을 알려주는지만 살펴보면 돼요.
병은 세 번째 천간이니까 양이에요. 또 병과 정은 화에 속하는 짝이었죠. 그러니 병은 양화(陽火), 불이라는 오행에 속하는 양의 천간이에요.
이번에는 병오(丙午)와 갑오(甲午)를 나란히 놓아 볼게요. 둘 다 실제 60갑자에 들어 있는 이름이에요. 뒤의 오(午)는 같지만 앞의 천간은 병과 갑으로 달라요.
갑은 첫 번째 천간이니 양이고, 오행은 목이에요. 병도 양이지만 오행은 화였죠. 그러니까 병오와 갑오는 앞의 천간이 모두 양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하나는 화이고 다른 하나는 목이라는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이름을 통째로 외워야 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어느 글자가 바뀌었고, 무엇은 같으며,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요. 아직 지지를 자세히 모르더라도 천간 부분만큼은 스스로 읽어 낸 거예요.
물론 이런 분류만으로 어떤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처음에 갑과 을도, 갑과 병도 같은 편이라고 했던 말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릴 거예요. 누가 누구와 닮았는지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닮았다고 하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니까요.
낯설었던 천간 열 글자가 한꺼번에 쉬워지는 건 아니어도 괜찮아요. 이제 글자 하나를 만났을 때 어디에서부터 살펴봐야 하는지는 알게 됐으니까요.
참고 자료
- 홍콩천문대(Hong Kong Observatory), Heavenly Stems and Earthly Branches. 천간 열 글자의 순서와 간지 체계.
- 廖中, 《五行精紀》 권3 〈論干神一〉. 「十干例」의 오행 배속과 「五行純陰陽格」의 음양 구분.
- 《滴天髓闡微》 〈天干〉, 任鐵樵 해설. 천간의 음양·오행 분류와 사물에 빗댄 해석에 대한 비판.


